강경애(姜敬愛)
일제 강점기 여성 소설가 겸 시인,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그는 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 당시 평양의 학생운동 조직인 「친목회」, 「독서조」 등에 참여하였다. 1924년 잡지 「금성」에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 그무렵 무산 아동을 위한 흥풍 야학교를 개설해 학생과 농민을 지도했다.
1931년 단편소설 『파금(破琴)』으로 문단에 데뷔,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인간문제』가 히트를 쳐서 명성을 얻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장편 소설 『어머니와 딸』 단편소설 『부자(父子)』 『채전(菜田)』 『소금』 등을 발표, 특히 『인간 문제』와 『지하촌』은 강경애를 새롭게 주목하게 된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남천(金南天)
본명은 김효식(金孝植),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시 잡지 『월역(月域)』의 발간에 참여하였고, 호세이대학 재학 중 KAPF동경지회(支會)에 가입,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카프의 소장파 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장편소설 「대하」외에 창작집 『소년행』, 『삼일운동』, 『맥』 등이 있다. 비평으로는 「영화운동의 출발점 재음미」, 「세태와 풍속」, 「시대와 문학의 정신」, 「소설의 운명」, 「소설의 장래와 인간성 문제」, 「민족문학 건설의 기본임무」, 「조선문학의 재건」등을 들 수 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직후 좌익 활동을 시작 월북했고,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까지 올랐다.
나도향(羅稻香)
본명은 나경손(慶孫)이며 필명은 나빈(彬)이다. 1922년 『백조』의 창간호에 소설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 불리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1925년 『여명』 창간호에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하였는데, 한국 근대 문학사상 가장 우수한 단편 중의 하나로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날카로운 필치로 많은 작품을 써서 천재 작가로 알려졌다. 주요작품으로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등이 있다.
노천명(盧天命)
본명은 노기선인데 어릴 때 병으로 사경을 헤맨 뒤 천명으로 개명하게 되었다. 이화여전 재학 중 이화여전 교수이며 시인인 김상용의 추천으로 시 「밤의 찬미」, 「포구의 밤」 등이 신동아 지에 발표되면서 명성을 얻었다.
1935년 잡지 『시원(詩苑)』 동인으로 활동 창간호에 「시 내청춘의 배」는 등을 발표하였다. 1937년 조선중앙일보사를 사직하고 잡지 『여성(女性)』(조선일보사 발생)의 편집을 담당했다. 1938년 대표작인 「사슴」을 비롯한 「자화상」 등이 실린 시집 『산호림(珊瑚林)』을 출간했고, 잡지 『신세기(新世紀)』 창간에 참여했다.
해방 이후에는『매일신보』의 후신인 『서울신문』에서, 부녀신문사의 편집차장으로 근무했고,수필집으로 『산딸기』 『나의 생활백서(生活白書)』 등이 있다. 널리 애송된 그의 대표작 『사슴』으로 인하여 ‘사슴의 시인’으로 애칭되었다.
방정환(方定煥)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아동문화운동가, 어린이 교육인, 사회운동가이며 어린이날의 창시자이고, 호는 소파(小波)이다.
동학의 평등사상과 인내천주의를 바탕으로 한 어린이운동을 실천해 나가고,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고 전국 소년회 운동을 전개 하였다.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 창설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 발전시켰다. 1923년 3월 소년소녀 문예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동요, 동화, 도화극, 아동자유화, 세계어린이 예술전람회 등 어린이를 위한 문학과 예술의 가치를 부흥시켰다. 같은 해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문제 연구 색동회를 창립한다.
그의 대표 작품은 동요 ‘형제별’(번안), 동화『사월그믐밤』 소년소설『만년샤쓰』, 『탐정소년소설』, 『칠칠단의 비밀』, 『어린이 독본』등이 있다.
이 상(李箱)
본명은 김혜경(金海卿)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근무, 건강악화로 기사의 직을 버리고 황해도 배천(白川) 온천에 요양 갔다가 돌아온 뒤 종로에서 다방 ‘제비’를 차려 경영하였다. 이곳에 이태준·박태원·김기림·윤태영·조용만 등이 출입하여 이상의 문단 교우가 시작되었다.
1934년에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여 특히 박태원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小說家仇甫氏)의 1일(一日)」에 삽화를 그려주기도 하였다.
1930년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월간매신(月刊每申)』에 「보통기념」·「지팽이 역사(轢死)」를, 『조선중앙일보』에 국문시 「오감도(烏瞰圖)」 등 다수의 시와 「날개」(1936)·「지주회시(蜘蛛會豕)」·「동해(童骸)」등의 소설도 발표하였다.
채만식(蔡萬植)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다. 1924년 단편 「새길로」를 『조선문단』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한 뒤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 · 단편소설과 희곡 · 평론 · 수필을 썼다.
그의 작품세계는 처음에는 당시의 현실반영과 비판에 집중하는 사회주의 운동에 동조하는 경향의 작품을 썼지만, 차차 풍자적인 성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 기법에 있어 매우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대표작으로는 『레디메이드 인생』, 『탁류(濁流)』, 『태평천하(太平天下)』, 『치숙(痴叔)』, 『여인전기(女人戰紀)』, 『미스터 방』 등이 있다.